고드름 -안도현-
고드름이여,
어느 먼 나라에서 밤새 걸어왔는가
줄지어 고된 행군이었는가, 그리하여 지금은
그대 마디마디 발목뼈가 시린가
그대는 지붕을 타고 넘어 왜 마당에 한 발짝도 내려서지 않고
처마끝에 그렇게 정지, 상태로 고요한가
고드름이여, 영 마땅찮았는가
이 세상이 이렇듯 추해져서 발도 디딜 수 없다는 말인가
이 세상 같은 건 아예 상대할 가치조차 없어서
그렇게 얼음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아침은 외로워할 틈도 없이 살아온 생이 그대에게 발각되는 순간이네
나는 후회하네
외로워하지도 않고 천 권의 시집을 읽었다는 걸
외로워하지도 않고 만 잔의 술잔을 들이켰다는 걸
고독을 모르는 나를 꾸짖고 싶어서
고드름이여
품속에서 直指心經을 꺼내 낭랑히 읽고 있구나
외로울수록 당당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결빙의 폭포여
그대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게 아니로구나
내 이마를 후려치고,
꼬리지느러미로 허공을 치고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