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산골 이야기

설악산 오지마을 -마장터-

[정선통나무펜션] 2008. 7. 25. 16:51

2007년4월30일 오후. 

설악산 인적이 없는 오지 마을을 다녀왔다.

마장터,

 

샛령의 두번째 마루인 작은 샛령. 인제쪽에서는 숨이 단번에 차오른다고 된박재라 부르기도 한다. 길은 타래에서 풀려난 한가닥 실처럼 외줄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샛령으로 해서 마장터로 가는 길.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진부령과 미시령보다도 사람들의 왕래가 더 빈번했던 고개라 했다. 경사가 완만한 데다 거리도 지금의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이었던 탓이다.


소금이니 고등어자반, 미역 따위를 지게에 지고 고개를 넘어 콩이나 팥 등의 곡물과 맞바꾸었던 곳 마장터. “일제시대 때만 해도 돈이 귀하고 필요한 물건은 바꿈이를 했다고 전한다.‘바꿈이’는 물물교환을 뜻하고, 바꿈이를 위해 지게에 소금이니 고등어자반, 미역 따위를 지게에 지고 고개를 넘던 이들을 ‘선질꾼’이라 불렀다고 설명을 보탠다.

 

마장터는 미시령 초입에서 시작되는 서쪽 들머리에서 한시간 거리인 작은 샛령 너머에 있다. 70년대 초반 독가촌 정리사업 때 사람들을 내보내고 심었다는 낙엽송이 빽빽하게 시야를 가리는 곳부터가 마장터다.

 

 

“여기가 마장터요. 저기는 주막이 있던 자리라고 하고 마방은 저쯤에 있었대요.” 샛령에 들어와 산 지 햇수로 8년이 됐다는 이모씨는 오가는 약초꾼들에게 들었노라며 약간의 내력을 들려준다.

 

마장(馬場)터란 이름도 원통장으로 향하던 마꾼들이 쉬는 주막이 있던 데서 연유된 것이다. 인근 산골 사람들이 그들에게 물건을 구하려고 모여들다 보니 자연스레 장이 서게 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돼 봄이면 종자를 구하기 위해 인근 농부들이 몰리던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 밭에 같은 종자를 몇 년 심으면 병도 많아지고 소출도 줄어요.” 도원리 전 이장도 종자를 구하러 이른 봄 녹지 않은 눈에 다리가 푹푹 빠지는 고갯길을 넘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놓는다. 마장터 종자는 소출도 많아 인근 농부들에겐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마장터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지은 지 70∼80년이 됐다는 귀틀집은 굴피지붕 위로  억새로 이은 초가가 또 얹혀 있다. 이런 집 두 채가 샛령으로 난 길에서 살짝 빗겨난 골짜기에 그림처럼 놓여 있다.

 

 

속초 사람인 전모씨가 산다는 귀틀집에는 소나무를 깎아 만든 문패까지 걸려 있다. 겨울에는 이씨 혼자 집을 지키고 있지만 여름에는 개울가 움집에까지 나물꾼이며 약초꾼이 들어와 제법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라 한다. 마장터를 지나 샛령 마루로 가는 길 곳곳에 널려 있는 집터들에는 흔한 깨진 기왓장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돌담의 흔적만이 이곳이 집터였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남을 게 뭐 있우, 기껏해야 굴피 아니면 너와였을 테고 벽이야 흙이 고작인데 벌써 바람에 다 날려갔거나 썩어 버렸지.” 옛 사람들의 집은 사람들이 떠나면 이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해방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샛령 정상 성황당에서는 매년 인제군수와 양양군수가 성황제를 올렸더래요. 소까지 한 마리 잡고 크게 지냈어요.” 전 이장의 말마따나 마루에는 커다란 돌로 이뤄진 성황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돌무더기는 여기저기 돌담을 짓느라 흩어져 있었다. 대간을 남북으로 이어 걷는 종주 산행에 나선 이들이 하룻밤을 머무느라 그랬을 것이다. 나뭇가지에는 온통 빨갛고 노란 표지기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계곡은 온통 이끼가 뒤덮여 있고 낙엽은 무릎까지 쌓여 있다.

 

 

진부령과 미시령 갈림길에서 미시령쪽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군부대와 훈련장이 보인다. 샛령 들머리는 군 훈련장으로 길이 분명치 않은데 창바위 아랫길을 택하면 이내 길이 분명해진다.

 

 

마장터까지는 길이 외줄기라 길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계곡 길을 따라 한 40여분 오르면 경사가 급해지면서 길이 오른쪽으로 크게 꺾이는데 이곳이 샛령의 두번째 마루인 작은 샛령이다. 인재쪽에서는 숨이 된박에 차오른다고 해서 된박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은 샛령을 넘으면 이내 빽빽한 낙엽송이 앞을 가로막는다. 옛날 밭이었던 자리에 인공으로 심은 탓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낙엽송 숲에서는 길을 조심해야 한다. 나물꾼들이 오가느라 길이 어지럽지만 잡초가 무성한 공터를 향해 가면 틀림없다.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길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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