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사이인 부모님의 소개로 만나 3개월 만에 약혼하고 3개월 후 결혼식을 감행한 신우근(47)·한영순(46) 부부. 초스피드로 결혼한 이유는 “결혼 안할 거면 만나지도 말라”는 양가 부모님의 으름장 때문이었다. 결국 ‘엉겁결에’ 결혼을 전제로 데이트를 즐겼고 작년에는 결혼 20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작년이 더욱 뜻 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결혼 당시 약속했던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드디어 마련, 주변의 부러움을 듬뿍 사고 있어서다.
모던한 스타일의 내부 거실. 거실과 주방이 연결되어 있지만 거실에서는 주방이 보이지 않는 게 특징. 나무게단을 올라가면 손님방으로 활용하는 다락방이 나온다.
1, 3 목조주택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온 야외테이블. 남편 신우근 씨의 손으로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작품이다. 2 안방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 서너 개의 창문이 있어 햇살이 자연스럽게 드리워지고 바닥에 액자를 자연스럽게 늘어놓았다. 4 전체적으로 나무 느낌을 살려 마감해 편안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강하다. 하얀색 창문과 문은 목조주택의 포인트다. 5 이 집의 특징은 유난히 창이 많다는 것. 크기가 다른 창문을 통해 햇볕이 집안 구석구석까지 드나든다. 특히 화장실에는 천창이 있어 샤워를 하면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6 다락방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 창을 넓게 내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천장이 높은 거실에는 샹들리에로 포인트를 줬다.
자연과 소통하되 감각은 살린 집 전원주택을 갖는 설렘은 이런저런 욕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집의 외관과 방의 구조, 창문의 위치까지 까다롭게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생애 첫 번째 전원주택에 대해 무척 ‘의연’했다. 강신천 무무건축 소장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느긋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건축을 맡길 때도 강 소장(둘은 거의 비슷한 연배다)에게 “당신 마음대로 지슈!”라고 얘기했을 정도다. 집짓는 4개월 동안 현장에는 자주 갔어도 집에 대한 의견은 거의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믿음이 있었어요. 처음 만난 건 생태학교인 산마을고등학교의 건축을 강 소장이 맡으면서였어요. 이미 여러 ‘전작’들을 봐왔던 터라 그만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그냥 믿고 맡겼어요.” 부부의 기대처럼 강 소장은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그리고 주변 자연과 조화로운 집 한 채를 선사했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갖고 싶은 주인과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싶은 건축가의 뜻이 통한 셈이다. 물론 이들 부부가 주문한 사항이 있기는 했다. 바로 문을 열면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 그 소박한 주문이 이국적이면서 농가적인 분위기로 이어졌는데 그 핵심은 바로 거실과 부엌이다. 거실과 부엌의 커다란 창문을 열면 앞뜰과 뒤뜰이 보이고 자유로이 드나들 수도 있다. 부엌 테이블에 앉아 책이라도 읽으면 자잘한 산새소리가 들리고 가벼운 미풍이 온몸을 감싼다. 창이 많은 것도 자연과의 소통을 고려한 설계다. 거실과 부엌, 기다란 복도, 방, 화장실에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창이 여럿 달려 있다. 낮엔 집안으로 햇살을 쏟아내다 저녁이면 까만 밤하늘을 선사하는 이 집의 창문들은 마치 자연과 만날 수 있는 비밀통로와 같다.
방을 포기하고 얻은 이국적인 복도와 거실 ‘비움’의 미학을 살린 집에는 방이 두 개밖에 없다. 165㎡ 남짓한 크기에 비해 소박하다 싶을 정도다. 부부만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를 하다 보니 방을 여러 개 마련하는 것보다 다른 부분에 충실했다는 것이 부부의 이야기다. 방을 포기한 대가는 달콤했다. 이국적인 긴 복도와 키 높은 거실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복도에는 긴 창문을 여럿 두어 시시각각 햇살이 들어오게 했고, 바닥에는 액자를 자유롭게 놓아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 집에는 문이 보이지 않는 게 특징이에요. 침실을 구석에 놔서 거실과 완벽하게 분리했지만 사이에 문을 두지 않았죠. 문이 있으면 분리된 공간이라는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이 집에는 문 대신 긴 복도를 만들어 모든 것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죠.” 복도와 더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은 바로 천장을 높게 뺀 거실이다. 나무계단이 복층 다락방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인테리어 역할을 한다. 다락방은 손님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주변 손님과 학업 중인 아이들의 쉼터로 활용한다고. 한쪽에 넓은 수납공간을 두어 언제나 깔끔한 분위기를 풍기도록 만든 게 특징이다. 이쯤 소개하면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큰돈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총 건축비는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 정도에 불과하다. 땅이 평당 15만원, 건축비는 평당 400만원이 들었으니 2억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아름다운 집 한 채를 얻은 셈이다. “강 소장이 그러더군요. 이 정도 규모로 집을 짓는다면 소나타급이 될 거라고. 나름 소박하지만 실용성이 높은, 그래서 생활하기에 딱 적당한 공간이 될 거라고요(웃음).”
1 돌담 위에 놓인 빨갛고 노란 호박이 전원의 느낌을 한층 돋운다. 2 뒤뜰의 담장엔 앨리스가 드나들 법한 낮은 담장과 작은 문이 있다. 문을 통과하면 부부가 직접 가꾸는 작은 텃밭이 나온다. 3 강화도의 논밭과 어우러진 목조주택.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외양이 자연을 닮았다. 4 뒤뜰에 있는 토끼장. 작년에 처음 기를 때만 해도 손바닥만한 토끼가 어느새 통로가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부쩍 자랐다. 토끼를 비롯해 칠면조와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외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대신한다. 5 마당 한쪽에 만들어놓은 작은 연못. 자연을 이용한 인테리어는 작고 아담하게 만들어 단아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남편이 둔갑시킨 재활용품의 재발견 강화도의 그림 같은 집이 오로지 건축가의 손으로 완성된 것만은 아니다. 집이 아무리 모던하고 멋스럽다고 해도 정작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집주인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야외 테이블, 흰 복도에 자유롭게 놓인 액자, 그리고 앙증맞은 작은 소품까지 외국의 목가주택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감각이 꽤 멋스럽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이 남편 신우근 씨의 손재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워낙 손재주가 많은 사람이에요. 가구 만드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재료만 있으면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내거든요. 안방과 거실에 놓인 서랍장도 모두 남편이 만든 거죠. 남들은 맞춤가구를 구입한 줄로 알아요.” 아내 한영순 씨의 자랑이다. 워낙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가 많은 신씨의 취미는 가구와 소품 제작. 전원주택을 마련하면서 내친 김에 DIY 가구 제작까지 도전했다. 빈티지 느낌의 수납장, 마당의 흔들그네와 야외테이블, 그리고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꽃병과 장식품까지 모두 신씨의 작품이다. 그것도 집을 지을 때 남은 자투리 나무들을 이용하거나 인근 폐가에서 가져온 재활용품을 근사한 작품으로 ‘둔갑’시켰다. “재료를 특별하게 구입하지는 않고 기존 재료를 활용하는 편이에요. 재료가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거죠. 안방과 거실에 있는 수납장은 자투리 나무를 이용해 만들었고, 뒤뜰의 돌담도 주변 돌을 주워 하나씩 쌓아서 만들었어요.” 직장생활과 전원주택의 가구 제작까지 신경 쓰면서 덤으로 얻은 것은 다이어트 효과다. 시골생활이란 게 잡다한 일이 많아서 하루라도 몸을 여유롭게 쉴 수가 없는데다 가구까지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군살이 10kg이나 빠졌다. 허리둘레도 36에서 32인치로 확 줄었다. 대신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구 작품들이 여럿 생겼으니 이래저래 남는(?) 장사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덕에 예전의 ‘동안 이미지’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지만 말이다.
남편은 나무 재테크, 아내는 노인복지사 그림 같은 집이 있어도 ‘일’이 없으면 무료한 게 전원생활이다. 안락했던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자연과 벗 삼아 지내는 유효기간은 1년 남짓. 사계절의 신비함을 본 뒤에는 지루한 전원생활을 이기지 못해 다시 도심으로 유턴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진작부터 고민한 이들 부부는 꽤나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준비했다. “내년 봄에는 마당 한쪽에 33.05㎡ 남짓한 작업실을 만들 거예요. 평소엔 가구 제작을 하는 취미공간으로 활용하다 주말에는 부모님이나 아이들을 위한 별채로 사용할 계획이죠. 그 인근에는 나무도 심을 겁니다. 현재 집 인근 6610㎡ 정도를 사들였는데, 이곳에 나무를 심어서 내다 팔 생각이에요. 나무 재테크라고 할까요.” 오랜 기간 은행원이었던 그에게 나무 재테크는 생소하지만 전부터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였다고 한다. 아내 한영순 씨도 ‘강화인’이 되기 전부터 일거리를 준비했다. 일찍부터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딴 것. 유독 노인이 많은 시골에서 봉사도 할 수 있고, 용돈 벌이도 할 수 있는 틈새 직업을 찾은 셈이다. 모두가 우려하는 자녀교육은 진작부터 대비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아빠의 인생플랜을 공공연하게 세뇌(?)시켰다고 한다.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 대신 시골에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자유로운 부모상을 자주 얘기했고, 그 결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독립심을 기르게 됐다는 것. 현재 대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아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너무 미래에만 얽매이지 말라고 귀띔한다. 아파트값 올리려고, 혹은 아이들 성적을 더 올리려고 욕심을 내면서 미래형 행복만 꿈꾸면 현재의 행복은 없다고 말한다. 신우근·한영순 부부는 가끔 햇살이 좋은 날이면 야외테이블에서 둘만의 오붓한 식사를 즐긴다. 날씨는 조금 쌀쌀해도 따뜻한 스웨터 한 벌 걸치고 느긋한 식사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형 행복’을 즐기는 비결이라고 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