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맛나는 겨울 만나보셨나요
한겨레 입력 2012.11.22 14:20물메기탕·생대구탕·졸복국 등 지금부터 제철인 통영 별미 먹거리들
통영이 경치 아름답고 보기 드문 예향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맛고을'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빼어난 남해안 여행지 경남 통영의 볼거리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것이, 풍성한 해산물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음식과 독특한 음식문화다. 통영 여행길은 사철 맛있지만, 겨울이야말로 최상의 맛을 발산하는 철이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맛있는 통영의 겨울을 미리 만나보자.
타락죽처럼 부드러운 물메기탕과 담백한 생대구탕
통영 사람들은 계절마다 통과의례처럼 꼭 먹어야 하는 제철음식이 있다. 봄은 도다리쑥국이고 겨울은 물메기탕과 대구탕이다. 통영 사람들은 마치 두 음식을 챙겨 먹지 못하면 겨울을 날 수 없기라도 할 것처럼 안달이다. 통영 물메기탕보다 시원하고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해장국을 나는 결코 먹어본 적이 없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물메기가)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한 것처럼 술꾼들에게 명약이다. 또 조선말 이규경이 지은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의 표현처럼 "살은 타락죽(찹쌀과 우유 등을 섞어 끓인 죽)처럼 부드럽고 연하다".
통영의 식당들이 차려내는 대구탕은 도시에서 흔히 먹는 냉동 대구탕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생대구를 써서 맑게 끓이는 통영 대구탕은 그 깊은 감칠맛으로 얼었던 몸을 순식간에 녹여버린다. 한류성 어족인 대구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다. 겨울 대구철이면 서호시장에는 큼직한 생대구들이 나온다. 즉석에서 회를 떠주기도 한다. 이때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것이 대구회다. 제 새끼까지도 잡아먹는 포악한 성질과는 달리 대구회의 맛은 담백하고 부드럽다. 대구는 겨울 통영의 진정한 귀물이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감칠맛 절정인 대구
회로도 즐길 수 있어
천국의 맛 지옥의 맛 복국
"복어는 천계(天界)의 옥찬(玉饌)이 아니면 마계(魔界)의 기미(奇味)다." <미미구진>(美味求眞)이란 책에서 인용했다는 정문기 선생의 <어류박물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독이 있는 물고기는 대체로 맛이 좋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맹독의 복어를 탐하는 이유는 그 맛이 워낙 뛰어난 까닭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위험한 물고기를 탐식한다. 소동파는 "복어의 신비한 맛은 생명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찬양했다.
복어는 이즈음부터가 제철이고 통영은 이 땅에서 복국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고장이다. 요즘 통영 복국집들의 주재료는 졸복이다. 옛날에는 까치복, 밀복, 참복 등 큰 복을 주로 썼다. 그중에서도 점밀복, 흰밀복, 흑밀복 등 밀복 종류를 많이 썼다. 하지만 요즘엔 큰 복들이 잘 잡히지 않으면서, 많이 나오는 졸복들을 쓴다. 크기는 작아도 졸복의 맛이 밀복류보다 개운하다. 겨울이면 생졸복을 쓰는 통영 복국은 그 맛이 투명하면서도 깊다. "복어를 먹으면 신통하게도 체내의 불화(不和)가 사라지고 엄동설한의 추위도 잊어버리게 한다." 이 또한 <미미구진>에 나오는 이야기다.
큰스님도 카사노바도 즐기던 특별한 맛 굴
조선 명종 때 스님 진묵 대사는 거침없이 한세상을 살다 간 도인이다. 스님이 전북 김제 망해사에 계실 때 곡식이 떨어지면 해산물들을 채취해서 허기를 채우곤 했다. 하루는 배가 고파 바위에 붙은 굴을 따서 드시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왜 중이 육식을 하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스님은 "이것은 굴이 아니라 석화"라고 우겼다. 굴이 바위에 붙은 모습은 영락없이 돌에 핀 꽃과 같다. 석화의 유래다.
카사노바와 나폴레옹도 굴을 즐겼다. 나폴레옹은 침략전쟁터에서 카사노바는 사랑의 전쟁터에서. 하지만 굴도 먹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리가 피면 굴을 먹지 말라' 했고, 일본에서는 '벚꽃 지면 굴을 먹지 말라' 했다. 서양에서는 'r'자가 들어 있는 달에만 굴을 먹으라 했다. 'r'자가 없는 달인 5~8월은 굴을 먹지 않는 것이 상식. 산란기인 이때는 굴에 독성이 있고 바다에도 세균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이 나라 굴의 70%가 통영 바다에서 나온다. 찬바람이 불면서 굴은 다시 맛이 들기 시작한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통영은 온통 굴 천지가 된다. 굴은 살이 지나치게 탱탱하거나 실하게 여물어도 좋지 않다. 그런 굴은 삶으면 푸석해진다. 굴 맛이 가장 뛰어난 시기는 11~12월. 이때 속살이 맞춤하게 찬다. 어떤 해산물이든 바다에서 막 건져 올렸을 때가 가장 맛있다. 이즈음 통영 굴은 바다의 우유라는 수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통영 굴 한 접시를 먹는 것은 바다의 영양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일이다.
크기는 작아도
맛은 더 개운한 졸복국
엄동설한 추위도 싹
입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맛 연탄불 곰장어 구이
입안에서 녹는 듯이 부드러운 곰장어 구이를 맛본 적이 있는가. 무전동 옛 통영시외버스터미널 부근 골목에 가면 이런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골목엔 아직도 연탄불로 활곰장어를 구워주는 목로들이 여러 군데 있다. 특히 소금구이 맛이 뛰어나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맛이다. 손질을 한 곰장어는 민물에 씻지 않고 석쇠에 올려 즉석에서 연탄불로 구워준다. 노부부가 30년을 곰장어만 구워 파는 집도 있다. 할아버지가 곰장어를 잡아서 손질해주면 할머니는 연탄불에 굽는다. 할머니는 곰장어를 구우면서 부채질을 하고 자주 뒤집어주는데, 부채질을 하는 것은 나쁜 냄새를 날려 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전동 골목의 연탄불 곰장어 구이를 한번 맛본 사람은 평생 그 부드러운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travel tip
2년 검증한 추천 맛집
통영에서 만 2년을 살아오며 오랫동안 맛있는 집은 숨겨 두고 지인들과만 다녔다. 대체로 유명해지면 맛도 변하고 나 또한 줄을 서서 먹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걱정이 없지 않다.
다찌
집인 대추나무(055-641-3877), 벅수실비(055-641-4684), 물보라다찌(055-646-4884), 강변실비(055-641-3225)는 예약이 필요한 집들이다.
복집
은 동광식당(055-644-1112), 호동식당(055-645-3138), 만성복집(055-645-2140)이 특별하다.
대구와 물메기탕
은 계절음식이라 대체로 병행한다. 대구탕은 새풍화식당(055-645-9214)이, 물메기탕은 송학횟집(055-644-2460)과 분소식당(055-644-0495)이 일품이다.
연탄불곰장어
는 야간열차(055-645-9808)와 삼수갑산(055-644-4339)이 특미이고, 굴은 영빈관(055-646-8028)의 굴전과 굴국, 향토집(055-645-4808)의 굴튀김이 괜찮다.
본문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요즘 통영에 오면 한번쯤은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멍게비빔밥(사진)이다. 멍게가(055-644-7774)는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멍게요리 전문점이다. 통영 전래의 홍합 엑기스를 소스로 사용하는 멍게비빔밥이 일품이다. 통영식 비빔밥인 나물밥도 맛깔스럽다. 풍년식당(055-645-5027)의 한정식과 명촌식당(055-641-2280)의 생선구이, 서울식당(055-642-6893)의 낙지볶음은 좋은 재료를 쓰면서도 가격과 맛이 모두 착한 식당들이다.
해산물 요리의 알파와 오메가 다찌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내내 한 가지만 먹는 일은 고역이다. 맛있는 해산물만 한자리에서 조금씩 다양하게 맛볼 수는 없을까. 통영에서는 가능하다. '다찌'가 있기 때문이다. 술만 시키면 안주는 주인이 내주는 대로 먹는 술집이 다찌다. 통영의 다찌에서는 계절마다 제철 생선회와 다양한 해산물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다찌에는 생선회와 굴, 멍게, 개불, 피조개와 뿔고둥회, 미더덕회, 볼락구이, 해초류, 생선조림, 방풍나물 등 통영 바다와 들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음식이 다 있다.
통영 사람들도 다찌의 어원은 잘 모른다. 통영문화원 김일룡 향토사연구소장은 "다찌가 일본 선술집을 뜻하는 다찌노미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다찌에서는 시장에 나온 식재료에 따라 매일 메뉴가 바뀐다. 다찌는 본래 술값만 받고 안주 값은 안 받는 술집이었다. 술값에 안주 값이 포함되니 술값은 비싸다. 그래도 나오는 음식에 비하면 헐하다. 대체로 통영 사람들은 다양한 해산물 안주를 고루고루 조금씩 먹으며 술을 즐긴다. 다찌 문화가 유행할 수 있는 배경이다. 다찌가 유명세를 타고 다찌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문화가 조금 변했다. 관광객들은 대체로 술보다 안주를 맛보는 데 목적이 있으니, 주인으로선 기존의 방식으로는 팔아도 손해였다. 그래서 이제는 기본요금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다찌는 통영 해산물 요리의 알파요 오메가다.
글 강제윤 시인, <어머니전> 지은이·사진 이상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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